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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후손 데니스 텐 "평창은 내게 특별한 올림픽"
2017-12-19 |
조회 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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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 선수 데니스 텐은 카자흐스탄 국민 영웅입니다.

각종 국제 대회에서 메달을 따내며 피겨 불모지 카자흐스탄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데요.

독립운동가 후손이기도 한 데니스 텐의 이야기를 들어 봅니다.

[녹취구성]

[데니스 텐: 안녕하세요. 저는 카자흐스탄의 피겨 선수 데니스 텐입니다.]

Q1. 한국인 후손이라는 걸 느낀 적이 있나요?

[데니스 텐: 저는 늘 제가 한국인이라고 느꼈어요. 그냥 알 수 있는 거예요. 어떻게, 왜 알게 됐는지 물어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요. 자라날 때부터 한국 전통문화를 접했어요.상에는 언제나 쌀과 김치, 국이 있었어요. 된장찌개 같은 것도요. 자라면서 자연스레 가족 문화에 익숙해지다 보니 특별하게 제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집에 오면 전 카자흐스탄-한국인이었죠. 카자흐스탄에서 내려오는 전통이 한국 것에 비하면 조금 변했을 수 있지만, 저희 할머니, 할아버지는 늘 전통을 지키고자 노력을 많이 하셨어요.]

Q2. 민긍호 의병장에 대해 들은 적이 있나요?

[데니스 텐: 할머니는 민긍호 고조할아버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어요. 카자흐스탄에는 한국 커뮤니티가 있어요. 매년 한국의 영웅들을 새긴 달력을 나눠주는데, 모두가 알 만한 분들이 등장하죠. 그중에 한 분은 늘 민긍호 장군이셨어요. 할머니가 처음 고조할아버지의 초상화를 보여줬던 게 생각나요. 보여주시면서 제 고조할아버지라고 하셨죠. 제 가족 중 영웅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절감한 순간이었어요. 고조할아버지의 묘소는 3번 방문했고, 기념탑이 있는 원주에도 한 번 찾아갔죠. 믿을 수 없었어요. 매 방문이 처음인 것처럼 감명받았죠. 그리고 감사했어요. 그곳에 가면 그가 얼마나 대단한지, 한국에 끼친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를 체감할 수 있거든요. 또 그의 업적을 기억해주고 묘소와 기념탑을 챙겨주는 사람들에게 고마웠어요. 놀라운 일이죠.]

Q3. 가장 큰 팬은 누구인가요?

[데니스 텐: 매일 할머니를 생각해요. 할머니는 민긍호와 저의 팬이었죠. 아마도 제 가족 중에 제일 열렬한 팬이셨을 거예요. 가족 중에서뿐만 아니라 제 피겨 인생 전체를 통틀어서요. 할머니 집에 가보면 모든 신문이 다 저에 관한 거였고, 벽엔 저의 사진들이 걸려 있었죠. 모든 것이 제 업적과 관련한 거였어요. 제가 메달을 따기 전부터 주변 사람들은 이미 저를 다 알고 있었어요. 할머니는 언제나 제 걱정을 하셨고, 제 가장 큰 팬이기도 하셨죠. 제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할머니의 힘이 커요. 할머니는 카자흐스탄에서 한 제 공연을 단 한 번도 놓치신 적이 없어요. 카자흐스탄에서 세 번 연속 아이스쇼를 개최했었는데, 휠체어에 의존하시면서도 언제나 제 공연을 보러 오셨어요. 장애인이 오기에 불편한 곳도 있잖아요. 특히 아이스링크는 춥거든요. 그런데도 한 번도 안 오신 적이 없어요. 할머니는 작년 10월에 돌아가셨어요. 1년도 안 됐죠. 제 삶과도 같은 분을 잃는다는 건 슬픈 일이에요. 언젠가는 다가올 일이긴 하지만, 저는 할머니와 사이가 엄청 좋았거든요. 할머니가 힘들어하실 때, 늘 "네가 월드 챔피언이 되기 전까진 난 죽지 않을 거다"라고 말씀하셨어요. 할머니 컨디션이 좋으셨을 땐 월드 챔피언이 두 번 되기 전까진 죽지 않겠다고도 하셨죠. 감동적이었어요. 제가 피겨선수로서 성공을 이룬 대부분의 순간을 보고 가셔서 행복해요.]

Q4. 카자흐스탄 내 피겨 위상은 얼마나 달라졌나요?

[데니스 텐: 카자흐스탄 내 피겨스케이팅의 위상은 급격히 변했죠. 제가 어릴 땐 이렇다 할 환경도 조성되지 않았어요. 저는 자연 상태의 얼음에서 처음 스케이트를 시작했어요. 당시엔 냉동장치도 없었고, 아이스링크도 없었죠. 겨울 동안에만, 자연 그대로의 얼음에서만 가능했죠. 저도 가끔씩 스케이트를 타던 많은 아이들 중 한 명이었죠. 재미로 빙판 위에서 스케이트를 탔던 거죠. 지금은 상황이 좋은 쪽으로 많이 달라졌어요. 그 변화를 지켜보는 입장을 넘어서서 그 변화에 제가 한 축이 될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고, 제게도 동기부여가 되는 일이죠. 지금은 아이스링크가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 됐어요. 주말마다 아이들에게 스케이팅의 매력을 홍보해 줄 아이스링크도 여기저기 많이 생겼고요. 요즘은 어린아이들을 위한 스케이팅 세미나도 열고,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훈련도 받을 수 있게 도와줘요. 친구들이 언제든지 조언을 받을 수 있게 늘 연락하고 있죠. 저는 원만한 성격이에요. 아이들뿐만 아니라 학부모, 코치들과도 연락해서 세미나나 전문 수업, 아이스쇼를 열죠. 이런 것들은 스케이트를 배우는 어린아이들을 도울 뿐만 아니라 카자흐스탄 내 피겨스케이팅 위상도 높여줘요. 작년에 카자흐스탄에서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가 열렸어요. 굉장히 큰 행사였죠. 카자흐스탄에게 찾아온 큰 변화 중 하나였어요. 그 전엔 카자흐스탄에 피겨스케이팅 선수도 없었고, 피겨를 보러오는 관중도 없었거든요. 유니버시아드 대회가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행사는 아니지만, 마치 올림픽처럼 열렸어요. 제가 출전한 날에 3만 6천 명이 넘는 관중들이 와줬죠.]

Q5. 평창 올림픽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데니스 텐: 평창. 올림픽이 저의 고향이자 제2의 고향, 모국이기도 한 한국에서 열릴 거라는 생각을 할 때마다 어서 그 순간을 경험하고 싶어져요. 제가 피겨를 그만두지 않은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올림픽이었어요. 제가 평창 올림픽 이후에 계속 피겨를 할지는 모르겠어요. 지금 저의 모든 관심사는 평창 올림픽이에요. 제겐 굉장히 특별한 올림픽이거든요. 아마도 마지막 올림픽이 될 수도 있고요. 시간이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가올 올림픽은 지금 제 삶의 전부와도 같아요. 한국 사람들, 할머니, 그리고 민긍호 고조할아버지를 생각하며 경기에 임하고 싶어요. 제겐 특별한 올림픽인 만큼, 제 무대가 끝나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겨지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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