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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에서 일제 연구자로…호사카 유지 교수의 꿈은?
2018-12-05 |
조회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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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한국 땅!

주장은 쉽지만, 근거를 대는 일은 쉽지 않죠.

그런데 여기 독도가 왜 한국 땅인지 알려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일본에서 귀화한 호사카 유지 교수인데요.

평범한 공대생에서 일제 연구자가 되기까지!

호사카 유지 교수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시죠.

[인터뷰: 호사카 유지 / 세종대학교 교수]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인, 원래는 일본인이었지만, 2003년에 한국인으로 귀화한 세종대학교의 호사카 유지 교수입니다."

스포츠 스타·강한 마음·적극성 한국의 매력은 '사람'에 있다!

[인터뷰: 호사카 유지 / 세종대학교 교수]
"일본에서 활약하는 재일동포 유명한 야구선수라든가 연예인들이 있어서 거기에 재일동포가, 그러니까 한국인들이 우수하다는 느낌을 많이 가졌습니다. 그게 첫 번째 계기였죠. 예를 들면 역도산이나 최배달이라는 사람들이 일본인으로 알고 있었는데 재일동포였어요. 그런 부분이나 400승이라는 어마어마한 승리를 올린 가네다 마사이치라는 투수, 프로야구 일본 프로야구 투수도 북한 출신 재일동포였고. 잘 알려진 장훈 선수도 재일동포죠. 그런 식으로 일본에서 우수한 성적을 올린 스포츠 선수 중에는 재일동포가 대단히 많았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특히 그런 데에 많이 동경을 느끼는 시절이잖아요. 그래서 마치 슈퍼맨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한국인들이 많았습니다. 재일동포를 보면서 많이 느낀 부분인데 감정의 기복이 그렇게 심하지 않다는 것. 일본에 있는 재일동포 분들, 그것은 많은 세월 차별을 받았기 때문에 오히려 마음이 상당히 안정화되어있다. 이것은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마음을 다스리는 힘이 강하다는 것을 제가 느껴서. 그러니까 제 친구였던 재일동포 분들은 상당히 어른스러웠어요. 그런 게 저에게는 상당한 매력으로 느껴졌습니다. (한국은) 특히 사람에 대한 매력이 강한 것 같아요, 저에게 있어서는. 그리고 또 한국인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상당히 적극적이에요. 그리고 일본 사람들끼리는 1m 정도는 떨어져 있어야 정상이지만, 한국에 오면 얼굴이 바로 앞에 다가오는 그런 느낌이 있어서 그러니까 그것은 장단점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상당히 여러 면에서 사람을 적극적으로 대한다는 부분은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이 한반도라는 지형이나 지정학적으로 여러 가지 샌드위치가 되는 신세이기 때문에 국가적으로는 상당히 고생했지만, 한국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을 보면 굉장히 우수한 분들이 많다는 느낌을 지금도 갖고 있습니다."

조상 중에 한국인이 있다는데?

[인터뷰: 호사카 유지 / 세종대학교 교수]
"아주 옛날에, 그러니까 1,500년쯤 전에 제 조상 호사카라는 이름이 유서 깊은 이름이라서 옛날부터 있습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후지와라 씨라는 백제계 호적으로 올라갑니다. 의자왕한테도 연결되는 그런 호적이라서 백제가 망할 무렵, 그 일본에 정착된 그런 호적이 제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러니까 저는 백제 유민이다는 생각이 조금 있습니다."

공대생을 정치외교학도로 만든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인터뷰: 호사카 유지 / 세종대학교 교수]
"그래서 한국에 관심을 두고 있었는데,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알게 됐어요. 일본에서 그런 것을 가르치지 않는 시절이었고 지금도 가르치진 않죠. 처지를 바꿔서 생각하면 일본의 국모를 외국인이 살해했다면 일본인이 그것을 용납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어요. 그래서 한국인이 일본인에게 갖는 감정 같은 것을 느꼈어요. 그래서 언젠가는 한국에 가서 한일 관계를 연구해서 이런 부분에 대해서 한국인하고 많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대학교 시절이었죠. 그래서 한국말을 배우기 시작했고. 한국말에 대한 매력도 좀 있었어요. 상당히 서울에서 들려오는, 당시 라디오에서 들렸기 때문에. 한국어가 매력적이었기 때문에 독학하기 시작해서. 그런 것도 있고 해서 1988년에 한국에 유학하러 온 거죠. 원래는 저는 공학계통이었고요. 그러나 한국에 와서 정치외교를 전공합니다. 그것으로도 역사적인 공부가 가능하기 때문에. 정치외교는 현재하고 미래까지도. 현재하고 미래까지도 볼 수 있기 때문에 역사학보다 정치외교를 선택하게 됐습니다. 원래는 저는 인문계, 그러니까 고등학교까지는 역사 공부를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그래도 수학을 좀 잘했기 때문에 우리 집에서는 회사도 있었기 때문에 저를 이공계로 보내려고 아버지가 많이 권유한 것입니다. 당시 일본에서는 수학을 좀 하면 다 이공계로 가는 것이 상식이었어요. 저도 인문계라는 것을 알면서도 크게 반대할 어떤 구실도 없기 때문에 아버지의 권유로 이공계로 진학했는데, 대학교에서도 거의 인문계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독학으로요. 그러니까 역사라든가 철학, 종교 이런 것을 오히려 공부해서 이공계가 저의 적성에 맞진 않았어요, 사실. 그래서 지금 제대로 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일제 강점기 연구자, 붉은 악마…그리고 '한국인'이 되다

[인터뷰: 호사카 유지 / 세종대학교 교수]
"그래서 한국에 와서 제가 일제강점기를 중심으로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석사, 박사를 계속 공부하고 있었는데요. 그 가운데 서서 한국에 일제가 남겨놓고 간 일제강점기의 책들이 20만 권 정도 남아있다는 정보를 얻었습니다. 그게 일제강점기에 볼 수 있었던 시설에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발견한 것은 서울대 도서관이나 중앙도서관이죠. 일제강점기부터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보면 당시 일본이 어떤 생각으로 조선, 만주, 그리고 대만에 대해서 식민지 정책을 수행했는지를 알 수가 있는 것들이 많았어요. 20만 권이니까 또 자유롭게 볼 수 있어요. 일본에 그런 문서가 있다 하더라도 일본에선 제약이 대단히 많습니다. 귀중본이라고 해서 보여주지 않는 곳들이 대단히 많습니다. 그래서 연구한다는 차원에서는 제가 그러한 자료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일본에 돌아가면 한국에 다시 와야 하니까 자꾸 와야 하죠. 그러니까 그것은 학술적으로도 한국에 남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벌써 석사, 박사 시절에 갖기 시작해요, 제가. 또 한국을 많이 좋아하게 됐기 때문에 한국에 남아도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2002년 특히 월드컵 4강으로 올라간 한국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면서. 그때 한일 공동 개최였거든요. 일본인들이 먼저 패배했지만, 이긴 한국을 계속 응원했어요. 그렇게 해서 그때 제가 생각한 것은 한일 간에 여러 가지 국경 같은 것도 허물어져 갈 것이다. 마음의 장벽이 계속 사라지고 한일 간이 하나가 될 것이 아닌가. 그런 희망을 많이 가졌고. 그래서 그때 귀화하는 것을 결심합니다. 그렇게 해서 일본에 있거나 한국에 있거나 똑같다고 생각해서 또 한국에 많이 남기 위해서는 귀화를 해야 하니까요 당시. 그렇게 해서 2002년에 신청해서 2003년에 귀화 허가를 얻었습니다."

귀화했는데 이름은 그대로?

[인터뷰: 호사카 유지 / 세종대학교 교수]
"호사카가 성이기 때문에 호 씨로 바꾸려고 몇 번 했습니다. 호유지로요. 그러나 주변에서 반대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또 독도가 한국 영토라는 입장에서 쭉 연구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 이름을 가지면서 독도가 한국 영토라고 하는 것이 효과적이지 않겠냐는 분들이 꽤 많아서요. 그런 것도 있어서 당분간은 좀 현재 이름을 갖고, 적당할 때에 제가 이름을 한국 이름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호유지라고 생각하지만, 물론 완전히 결정된 것은 아니고요. 여러 가지 이름의 후보가 있습니다. (어떤 것들이 있는지 말씀해주세요) 어…. 그건 비밀이에요."

"독도는 어느 나라 땅입니까?" 학생 질문 하나로 시작된 독도 연구

[인터뷰: 호사카 유지 / 세종대학교 교수]
"당시 일본에서는 독도에 관해서 관심이 없었어요. 90년대. 일부 정치인들의 관심 대상이었고 일본사람들은 독도, 다케시마가 어디에 있는지를 몰랐어요. 저도 그런 상황이었죠. 그러나 제가 90년대 중반에 한국 대학에서 강의하기 시작했거든요. 그때 어떤 학생이 손을 들어서 질문했습니다. 독도가 일본 것입니까 한국 것입니까. 그런 질문이었어요. 장난삼아 질문한 것 같은 느낌도 조금 있었는데, 제가 일본인이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제가 잘 모른다고 솔직하게 답변했어요. 그러나 독도 문제가 한국에서 상당히 이슈(논쟁거리)가 됐었던 걸 제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공부해서 대답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98년부터 독도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현재까지 20년 정도 독도 연구를 하고 있고요. 그 학생에 대해서는 공부해서 대답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그것은 벌써 제가 여러 곳에서 답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요?

[인터뷰: 호사카 유지 / 세종대학교 교수]
"(현재는) 한국 정부 외교부하고도 상당히 밀접한 관계가 있고요. 경상북도 쪽 독도위원회도 들어가 있고요. 그리고 여기 세종대 독도종합연구소 소장이기도 하고 그래서 연구를 하고 그것을 인터넷에 올리기도 하고요. 그래서 우리가 갖고 있는 '독도와 동아시아'라는 인터넷 사이트가 있어서 거기에 연구성과라든가 여러 가지 뉴스를 영어, 일본어, 한국어로 올리고 있습니다. 그런 활동이라든가. 독도의 날, 그건 10월 25일인데 그 전후로 울릉도, 독도에 많이 가고 거기서 같이 간 분들하고 어울려서 이야기도 하고 강연회도 만들고. 또 독도에 가기도 하고요. 이런 식으로 주로 연구하고 강의. 여러 곳에서 독도 특강을 해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독도 특강을 또 많이 하고 있습니다. 독도 책은 2005년에 첫 번째 독도 책을 냈고요. 그건 일본 고지도에도 독도 없다(는 내용). 혹은 있을 경우는 한국 것으로 기재가 되어있거나 이런 것을 좀 모아서 냈고요. 그리고 2009년쯤에는 라는 책을 냈고 2010년에는 라는 책을 냈고요. 그 시리즈로 초등학생부터 읽을 수 있는 독도 책도 내기도 했고요. 또 최근에는 2016년에 라는 책도 냈습니다. 독도 책뿐만 아니라 한일간의 문화 비교 책이라든가 그런 것도 좀 내고 있습니다. 요새는 위안부 자료를 해석한 그러한 일본의 위안부 문제 증거자료집 이런 것도 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주로 한일 간의 현안에 대한 연구, 그런 것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특히 독도 연구에 대해서는 제가 논문도 미국 쪽에서 읽을 수 있는 논문집에 논문을 냈습니다. SSCI 논문이라고 하고요. 논문의 질이 높은 논문집들을 SSCI 논문집이라고 해요. 그런 곳들에 올린 이후에는 제 이야기가 상당히 국제 사회에 침투되어 있다는 것을 느껴요."

독도에 몇 번 가보셨나요?

[인터뷰: 호사카 유지 / 세종대학교 교수]
"역시 독도에 7번 정도 갔어요. 한때 독도에 1박 2일로 어떤 방송 하고 촬영 때문에 갔어요. 그러나 배가 오지 않게 돼서 4박 5일이나 독도에 있었습니다. 그때 독도 하고 같이 살았던 거죠. 그래서 구석구석까지 볼 수가 있었고, 비에 젖은 독도도 대단히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독도에서 낚시도 했고요. 그래서 독도라고 하면 대단히 가까운 관계예요, 저하고는. 상당히 그러니까 뭐라고 하나 애정을 느끼는 부분이 있죠. 그런 것이 제 독도에 대한 연구의 하나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독도는 한국 땅' 외치지만 말고 논리를 세워야!

[인터뷰: 호사카 유지 / 세종대학교 교수]
"계속 우리가 독도연구를 해야 하는 부분이 많이 남아있어요. 역시 연구가 정확하게 있어야만 그것을 더 국제적으로 호소할 수 있는 활동으로 연결됩니다. 논리가 없는 활동은 무너지는 셈이고요. 그러기 때문에 논리적인 부분이 중요하니까 아직도 조금 부족한 부분이 조금 있어요. 그것을 보완하는 연구는 계속해야 하고 또 사료집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역시 이성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아무리 감정이라든가 비이성적인 이야기를 해도 대부분 사람은 상당히 이성적인,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 쪽으로 갑니다. 그렇게 해서 행동합니다. 먼저 울릉도에서 독도가 보인다는 게 대단히 중요해요. 일본 쪽의 독도에 가장 가까운 섬이 오키섬이지만 거기서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울릉도에서 독도는 1년에 100일에서 120일 정도 날씨가 맑을 때 잘 보입니다. 보인다는 것 자체는 역사적으로 거기까지가 우리 영토라는 개념이 있었다는 사실이고요. 그리고 또 일본이 17세기에 독도가 일본 영토가 됐다고 주장하지만, 17세기 말에는 안용복이라는 사람을 통해서 울릉도, 독도를 오히려 일본이 당시 조선 것으로 인정한 역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일본은 17세기 한때 울릉도, 독도에 배를 보내기도 했어요. 그것을 안용복이 막아놓은 거거든요. 그러니까 지도에 당시 일본 지도에 울릉도, 독도에 가는 뱃길이 생겼어요, 지도에. 그러나 안용복 이후에는 뱃길 자체가 사라집니다. 일본의 공식지도에서. 이것은 일본이 울릉도, 독도를 정확하게 조선 것으로 인정한 증거예요. 그리고 1905년에 시마네현 오키섬에 독도를 편입시켰다고 하는데요, 일본이. 그러나 1900년부터 1905년 사이에 일본인들이 울릉도에서 독도를 가서 전복을 채취했습니다. 전복채취. 그때 세금을 울릉도 쪽에 냈습니다. 그래서 독도에서 어패류를 채취해서 세금을 울릉도에 낸다는 것은 독도가 한국영토라는 것을 일본 자체가 사실 잘 알고 있었던 것이고요. 그리고 1905년 독도를 시마네현 오키섬에 편입했다는 것도 비밀로 했고, 그건 침략 과정에서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전혀 인정할 수 없고요. 1906년에는 그것을 한국 정부가 독도라고 말하면서 독도는 한국 영토라고 주장한 문서도 다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본 주장이 성립되지 않고요. 그리고 2차대전 이후에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은 독도가 한국 영토라고 여러 가지 문서를 통해서 인정했습니다. 일본은 거기에 대해서 여러 가지 손을 써서 독도가 오히려 일본영토가 됐다고 말하지만, 그런 근거는 없고요. 일본 정부에 그 지도를 받아서 마이니치 신문이 52년 4월에 일본 영토 지도를 냈는데. 그 지도에도 독도가 정확하게 한국 영토라고 기재돼 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증거를 봐도 일본이 너무 억지를 부리는 것이고요."

그런데도 일본이 우기는 이유는?

[인터뷰: 호사카 유지 / 세종대학교 교수]
"그것은 역시 옛날의 식민지였던 한반도에 대해서 일각이라도 그러한 권리를 쭉 갖고 있어야 외교적으로도 일본이 한국 위에 군림할 수 있다는 식의 상당히 안 좋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독도가 일본 것이 된다고는 생각을 안 해요 일본도. 그러나 그것을 계속 주장함으로 인해서 외교적인 카드로 사용할 수가 있는 거죠. 그래서 한일관계가 나빠지고 한국 쪽 주장이 강해질 때 일본은 독도 문제를 주장합니다. 그것은 맞불작전으로 한국의 주장에 말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서 독도 문제를 강조합니다. 이러한 작전에 사용되는 카드이기도 하기 때문에 우리는 일본 쪽 속셈을 잘 알고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일본은 영토문제가 독도뿐만 아니라 북방 쪽에 있는 쿠릴열도라든가, 남쪽 중국과 사이에 있는 센카쿠열도라고 있어요. 그런데 독도 문제는 그중에서 가장 작은 문제입니다. 그러나 독도를 한국 것으로 인정해버리면 나머지 2개의 영토 문제에서도 일본이 밀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일본은 독도가 한국영토라고 알고 있어도 양보하지 않는 외교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도 우리가 알고 독도만 보지 말고 전반적인 일본의 영토 전쟁에 대해서 알고 대처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역사를 제대로 아는 것, 한-일 관계 정립의 초석입니다"

[인터뷰: 호사카 유지 / 세종대학교 교수]
"아무래도 한국 쪽에 한반도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한일 관계 이전의 단계죠 이것은. 그러니까 한국의 정체성, 한국 내에서 굉장히 많은 의견이, 좌파, 우파라고도 하고 보수, 진보라고도 이야기를 하고. 이런 부분에 정체성 문제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건 역사적인 부분에서 쭉 옵니다. 그러니까 가까이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어떻게 보느냐, 그리고 대한민국의 탄생을 어디에 두느냐 이러한 문제는 결국 역사적인 문제와 연결돼있고. 그것이 한국사람의 정체성하고 직결되는 문제이고요. 그러니까 일본하고 관계에서도 일본이 쭉 한국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한국은 자신의 힘으로 독립된 게 아니다. 그런 것으로 일본이 주장하는 거예요. 그건 한국사람의 정체성도 부정하는 의견이에요. 그러니까 일본이 패배함으로 인해서 한국이 독립됐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거든요. 이런 게 또 일본의 한국 쪽에 대한 대단히 오만한 논리가 돼 있습니다. 저는 아니라고. 그래서 독립운동이라든가 독립운동가 조명하라든가 이런 사람들이 일제로부터 독립하려고 했던, 그러한 내용이 있고 일제하고 관계없이 한국이 독립되었다는 논리도 계속 구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가 불법이었다는 데서 오는 한국의 정체성 이런 걸 회복시켜야 한다. 이게 중심이 돼서 그다음 새로운 한일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거죠."

일본 '욱일기' 문제도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겠군요?

[인터뷰: 호사카 유지 / 세종대학교 교수]
"역시 욱일기 논란이 2000년 이후에 일어나기 시작하고 있었어요, 한국에서. 2008년에는 거기에 많이 말려 들어가지 않고 관함식이 거행됐지만, 요새는 또 욱일기에 대한 논란이 아주 가속화됐기 때문에 확대됐기 때문에 한국 정부는 욱일기를 달지 않고, 각 나라의 국기 하고 태극기, 이런 식으로 관함식에 오시라고 요청합니다. 그건 일본에 대해서는 우회적으로 욱일기를 달고 오지 말라는 뜻이었죠. 거기에 대해서 일본은 결과적으로 거부했습니다. 우리는 일본이 거부해서 결과적으로는 일본의 자위함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렇지 않고 자위함이 참가하는 것을 원한 경우라면 욱일기를 달지 않고 이쪽의 요청대로 해달라고 그렇게 많이 원했지만, 일본은 거부한 거죠. 오지 않았고요. 이것은 욱일기 논란에 대한 본질을 조금 말씀드리면. 일본이 욱일기를 내세워서 침략전쟁을 감행했습니다. 특히 2차대전 태평양전쟁이 가장 큰 침략전쟁이었지만, 이때 항상 전쟁터에는 욱일기가 먼저 등장했던 거죠. 그러니까 이것은 나치 독일의 하켄크로이츠라는 그러한 전범기하고 같은 상징이었단 것입니다. 그러나 독일에 대한 청산은 전후에 대단히 강력하게 이뤄졌지만, 독일 국민이 그러한 청산에 앞장서서 하켄크로이츠 자체를 독일 국내에서 사용할 수 없게 만들었고 옆에 있는 프랑스도 같은 법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비교적 연합국의 그러한 강한 제재를 받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유는 6.25전쟁이라든가 동북아에서의 정세가 냉전 구도로 아주 강력하게 개편되었기 때문에 특히 6.25가 시작돼서 오히려 일본을 좀 옛날처럼 강력한 국가로 만든다는 미국 쪽 정책의 전환, 이런 것이 있었기 때문에 욱일기에 대해서 비교적 제재 대상을 하거나 이런 것이 논의 자체가 이뤄지지 않았던 거죠. 그리고 다시 자위대 깃발이 된 게 54년이지만, 자위대 자체가 일본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일본 안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그러니까 세계적으로 별로, 한국도 욱일기에 대해서 별로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 자위대의 세계적 활동이 늘어남에 따라서 욱일기가 눈에 띄기 시작했고, 그러한 침략전쟁을 잘 모르는 일본 젊은 세대가 욱일기를 스포츠 응원에 많이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그 대표가 축구 응원이죠. 거기서도 논란이 일어나기 시작해서 이번에 한국 국민감정을 생각해서 욱일기를 달지 말고 오시라고 하고 그런 것을 했는데 일본은 그것을 거부했습니다. (일본은) 계속 일본의 침략 자체를 부정하고 전범 국가라는 것을 계속 부정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법으로 금지하지 않는 한 한국 내에서 욱일기가 혹은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적인 것 모두를 한국 내에서만이라도 법으로 금지하지 않으면 이러한 감정적인 대립이죠, 사실. 이것은 몇 십 년이나 계속 이어질 것이고 이것은 한일관계에 마이너스예요. 그러니까 오히려 국내법으로 금지해버리면, 일본은 국내법을 지켜야 합니다, 한국에 들어올 때. 이런 식으로 하지 않으면 해결책이 없다는 게 저의 주장입니다."

강제 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일본의 반발은 어떻게 봐야 하나요?

[인터뷰: 호사카 유지 / 세종대학교 교수]
"대법원은 배상금을 내라, 위자료라는 게 배상금이거든요. 그것은 가해자였기 때문에 가해자, 원래는 일제강점기가 불법이었기 때문에 징용당할 어떤 이유도 없었는데 거기에 징용당한 고통, 이런 것에 대한 배상금입니다. 이건 현재까지 지급된 적이 없다, 그러니까 배상하라.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판결이었던 것입니다. 물론 일본은 현재까지 판결의 연결 선상에서 나온 게 아니니까 이건 한일관계의 근간이 된 청구권협정을 파괴하는 판결이라고 반발하고 있는 거죠. 그러나 한일기본조약 제2조를 보면 이번 판결의 정당성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쭉 말해온 게 아니었기 때문에 요새 갑자기 나온 느낌이 있어서 이게 정당성에 대한 논란은 좀 있을 거예요. 그러나 판결로서 뭔가 흠집이 있는 게 아니라는 것. 이런 논리적인 부분은 한국에서도 많이 깊이 분석해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측 근거 ① 일제강점 자체가 불법!

[인터뷰: 호사카 유지 / 세종대학교 교수]
"시작은 1965년 한일기본조약하고 한일 청구권 협정이죠. 그때 한일기본조약 제2조에서는 사실 일제강점기가 불법이었는지, 합법이었는지 이런 부분에 대한 조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법적으로 해석할 때는 일제강점기가 불법이었다고 읽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돼 있어요. 한일병합조약을 비롯하여 그 이전에 일본과 한국 사이에서 맺어진 모든 조약이나 협정은 '이미 무효, 이미 확인된다.'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한일병합조약은 1910년, 그리고 그 이전에 있었던 조약이나 협정, 을사늑약이라든가 여러 개 있어요, 1904년부터 시작된 한일의정서라든가. 이것은 '이미 무효, 이미 확인된다' 이렇게 돼 있어요. 이미 무효라는 뜻에 대해서 일본은 45년에 무효가 됐다고 주장하고 있고, 그러니까 일제강점기는 합법이었다. 그리고 한국은 원천적으로 무효라고 해석합니다. 그런데 한국말이나 일본말로 하면 '이미 무효'밖에 없으니까 그렇게 두 갈래로 나뉘는 게 어쩔 수 없어요. 그러나 한일기본조약의 실제 공식문서는 영문입니다. 이게 중요해요. 그러니까 한국 쪽에서 그러한 논란을 막기 위해서 영문을 정식문서로 하자고 해서 합의가 됐어요. 그런데 이미 무효라는 게 논란이 되는 부분이니까, 이건 영어로 'already null and void'예요. 'Already'는 '이미'잖아요. 'Null and void'가 '무효'인데, 그 뜻은 '원천적으로 무효'라는 뜻이에요. 그때 한국대표단이 'null and void'를 일본에 제안했어요. 일본은 그렇다면 문제가 된다 일본 쪽에서는, 그러니까 'already'를 넣어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합의를 했어요. 'Already null and void.' 그러나 직역하면 '이미 원천적으로 무효'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나 원천적으로 무효라는 뜻은 그렇게 바뀌지 않는 거예요. 그렇죠, 예. 그런데 그때 영문학자라든가 모두 확인해서 동의했어요. 그러니까 일본도 사실상 원천적 무효, 그러니까 1904년 이후 전부 무효다. 그것은 일제강점기가 무효라는 뜻이에요. 논란의 여지가 없잖아."

우리 측 근거 ② 배상금 청구는 정당

[인터뷰: 호사카 유지 / 세종대학교 교수]
"청구권 협정에서는 그때 일본이 제공하는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 합해서 5억 달러로 이제 한국인의 청구권이 모두 소멸했다고 나와 있는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돼 있는 문서를 봐도 국가에 대한 개인의 청구, 개인의 기업에 대한 청구 이런 것이 모두 소멸했다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제강점기가 불법이었다 하더라도 청구권 협정에서는 다 끝났다고 나와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역대 정권 입장에서도, 물론 군사정권은 말할 나위도 없이 그런 입장이었고, 일본 쪽의 입장 그대로였고요. 그리고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도 청구권 협정이 끝나버렸기 때문에 위안부 문제, 그리고 사할린 동포 문제, 원폭 피해자 문제를 제외하고 강제 징용 문제는 끝났다, 그런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청구권 협정에서 청구권이 소멸했다고 하더라도 소멸한 것은 보상금에 대한 청구권입니다. 보상이라는 것은 원래 받아야 하는데 받지 못했던, 그러니까 미불. 미불된 임금이나 이런 부분이죠. 그걸 청구하는 거예요. 그러나 일제강점기 자체가 불법이었다는 것은 거기에서 발생하는 배상금이라는 게 있습니다. 배상금은 보상금이랑 다르고요. 보상금은 상대가 나빴다, 라든가 우리가 나쁘니까 낸다, 이게 아닙니다. 보상금이라는 것은 도의적인 책임으로 내는 것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책임이 없어도 낼 수 있어요. 위안부에 대해서도 다 그런 거였어요, 현재까지. (중요한 건) 중국이나 미국의 포로에 대해서는 배상금을 냈다는 것. 중국인을 포로로 해서 강제징용시켰어요, 일본에서. 그 중국인에 대해서는 재단까지 만들어서 돈을 줘요. 근데 왜 우리에게는 안 해주나, 이런 논란이 있잖아요. 이건 일본의 논리로 가면, 그때 조선은 일본이었다. 이게 있는 거예요. 그건 일제강점기를 합법으로 보는 관점이죠. 그러니까 그렇게 가는데, 대만이나 조선에 대해서는, 일본인이었기 때문에 일본의 징용령에 그때 일본인도 동원됐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이게 일본의 논리고. 그래서 거기에 정확하게 맞설 수 있는 것은 (일제강점기 자체가) 불법이었다는 부분이죠. 이것을 한국 내에서도 정말 깊이 분석해서 많은 한국인이 그냥 감정적으로 이게 불법이었다고 알고 있잖아요, 그게 아니라 논리적으로도 알고 있어야 하는 부분입니다. 이건 논의가 쉽게 끝나진 않을 거예요. 그러니까 일본은 지금까지 인정했는데, 왜 지금 와서 그러냐. 이런 이야길 할 것이고. 거기에 대해서 우리는 사법 독립성을 강조해야 하고. 그리고 지금까지 입장을 수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노무현 정권이 그때 인정했다 하더라도 노무현 때 이야기를 그대로 이어받아야 한다는 게 없기 때문에 정확하게 수정돼서 오히려 올바른 의견이 그쪽이라고 해야 하는 게 있어요. 아마 타이밍을 보고 있을 거예요. 이 방향으로 가지 않는 한, 좀 어렵거든요, 사실."

대한민국 정체성의 완벽한 회복, 이것이 나의 꿈입니다.

[인터뷰: 호사카 유지 / 세종대학교 교수]
"시대적으로 어느 부분에서 저를 필요로 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약간 소명감을 느낀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소명감이란…. 한일관계의 정상화이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의 완벽한 회복. 나만 아는 한국은 세계에 우뚝 설 수 있는 아주 훌륭한 나라인데, 여러 가지 요인으로 그 훌륭함이 아직 숨겨져 있는 나라다. 그러나 그 훌륭함이 머지않아 세계적으로 발휘되는 그런 나라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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