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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쓰는 일기] 태권도 외길인생 이춘봉 사범
2019-01-06 | 글로벌코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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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도장에 나와 도복 매무새를 가다듬으며 하루를 시작한 것이 벌써 45년입니다.

낡고 빛바랜 도복 띠가 지난 세월을 말해주는데요.

애들레이드에서 '마스터 리'로 통하는 저는 올해 74살의 태권도 사범 이춘봉입니다.

지난 1973년 호주로 건너와 이 도장에서만 만 명이 넘는 제자가 나왔습니다.

[이춘봉 / 태권도 사범 : 당시에는 한국 사람도 없고 제가 제일 먼저 왔고. 일본 가라테가 있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태권도를) 코리안 가라테. 그 당시엔 미국에서도 코리안 가라테라고 불렀어요. 제가 나중에 태권도, 태권도, 코리안 태권도해서 명찰도 다 바꾸고 (그랬죠).]

저는 한국전쟁 때 폭격을 피해 평양에서 충남 공주로 피난 왔습니다.

목숨은 건졌지만, 이북에서 왔다는 이유로 동네 아이들의 놀림거리가 되곤 했죠.

빨갱이란 소리가 듣기 싫어 맞서 싸웠습니다.

'꼬마 싸움꾼'으로 동네에 소문이 난 저를 태권도의 세계로 이끈 건 큰 형이었습니다.

[이춘봉 / 태권도 사범 : 처음에 동네 학교 애들이 이북에서 피난 왔다고 자꾸 빨갱이래요. 자꾸 막내가 나가서 싸움하니까 (큰형님이) 안 되겠다 싶어서 나를 데리고 경찰서를 데려갔어요. 당시 공주에 경찰서에 태권도장도 있었고. 큰형님 생각엔 '얘가 무술을 하면 아마 자기가 자제하고 싸움을 안 할 거다' 하고.]

더 넓은 세계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무렵,

애들레이드 무술협회에서 태권도를 가르쳐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태권도란 말에 저는 큰 고민 없이 호주로 넘어왔습니다.

주변엔 한국인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는데요, '코리안 태권도'를 외치며 그땐 참 열심히도 살았습니다.

지난 2000년엔 태권도를 보급한 공로로 호주 정부가 주는 스포츠 메달도 받았죠.

훌쩍 지나가 버린 세월 앞에 몸이 예전 같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지금도 태권도를 알리는 자리가 생기면 어느새 힘이 나, 또 나서게 됩니다.

[조지 플라이트 / 이춘봉 사범 제자 : 이춘봉 사범님은 제 스승이자 멘토이자 이 땅에서 제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입니다./ 태권도로 숨을 쉬면서 사시는 분이에요. 지친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태권도가 사범님의 세계 그 자체라고 해도 될 만큼 태권도에 파묻혀 사세요.]

일흔이 넘은 나이 이제는 그만, 태권도를 놓고 편히 쉬라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제게 태권도는 살아가는 이유이자 삶의 버팀목입니다.

[이춘봉 / 태권도 사범 : 정신이나 기력은 옛날과 다를 게 없고. 모든 삶에서 에너지나 전혀 다른 게 없는 것 같아요. 감사한 건 이렇게 건강하고 아픈 데 없고. 그냥 그렇게 해서 늘 평안하게 살고. 늘 기쁘게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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