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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국어를 지켜야 정신을 지킨다" 박승의 씨 편
2019-02-10 | 글로벌코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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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의 / 1942년생]
(처음에) 우리 조선 사람들이 러시아말 몰랐죠. 전문적인 일 못 했으니 잡일을 했죠.

노가다라 하는. 그래서 돈을 못 벌었어요. (우리) 집에서는 땅집 일(농사) 했거든요. 농사 지어서 시장에 가서 팔고. 그렇게 해서 우리를 (키웠죠). 우리 부모들은 아주 어렵게 살았지만, 우리 자식들을 공부시키려고 (노력했어요).

45년도 12월에 러시아 정권, 소련 정권이죠. 조선학교를 설립했어요. '우리가 조국, 모국어를 배워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모국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7년제 학교를 졸업했는데, 한국말을 꽤 했습니다, 그 당시. 그런데 1964년도에 조선학교, 조선문화회관 같은 게 다 폐쇄되었습니다.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한국어를 안 쓰게 됐습니다. 25년 이상 한국어를 안 쓰니까 한국어를 다 잊어버리게 되었어요.]

1989년도, 서울 올림픽 이후에 사할린에서 한국 붐이 일어났습니다. 한국어를 연구하기 시작하고,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어요. 그렇게 한국어 재생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학원이 생겼다고 해서 제가 한국어를 더 배우기 위해서 그 학원에 갔습니다.

가니까 우리 친구가 가르치고 있었어요. '너 뭐하러 왔나?' 친구가 물어보네요. '한국어를 배우러 왔다'. (그랬더니) 친구가 '한국어를 가르칠 선생이 없는데, 넌 한국어를 조금이라도 알잖아. 가르쳐라.' '다 잊어버렸는데 어떻게 가르치느냐' 그렇지만 '가르치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가르쳐라' 그렇게 시작한 거예요.

한 20년 동안 가르치게 됐습니다. (1991년에) 사범대학 내에 동양학과가 설립되었고요. 거기에 한국어과가 따로 (생겼습니다). 한국어, 한국 문화, 한국 역사, 한국 지리, 여러 가지 한국에 대한 지식을 제가 학생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사할린 한인들은요. 그냥 우리 부모들하고 1세들 하고 만나서 얘기하다 보니 그 사람(1세)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지만 (사할린 동포에 관한) 깊이 지식이 없거든요. 그러면 안 되지요. 제가 가르치면서 한국의 정신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너는 외모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한국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한인 학생들이) 어느 깊숙이 한국인으로서의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요. 피가 자꾸 (공부) 시키는 것 같아요. 또 집에서 할머니들이 계시면 (할머니는) 러시아어 모르시니까. 밥도 한국식으로 먹고. 제사 같은 걸 할 때는 기제사나 차례 같은 것도 (집에서) 시키잖아요.

그래서 그 학생들이 아마 한국어를 공부하면서 '왜 (한국에서는) 이렇게 하는가'(를 알게 되는), 그런 점이 있는 것 같아요. 한국을 잊지 않고, 한국을 위해서 일하고, 협력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 후세들이 한국말을 배워야 합니다. 한국을 연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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