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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사람들] 조선의 나폴레옹 김경천 장군
2019-04-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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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일본 육군 사관 학교 입학

졸업 후 소위 임관 거부 그러나 생각을 바꾼다

'독립전쟁을 벌이려면 일본군 장교 생활을 해서 일본 군사기밀을 알아내야 한다'

3.1 운동 직후, 김경천은 만주로 망명한다

서간도의 신흥무관학교 교관으로서 수많은 독립투사를 양성

만주지역 항일독립운동의 주역으로 활동

러시아로 이동한 김경천은 창해 청년단, 수청 고려의병대, 고려혁명군 등을 이끌며 러시아 지역 항일 투쟁을 이끌었다

"시베리아에 가면 누구든지 우리 경천 장군의 놀라움을 알 것이외다"

"그를 보았고 그를 아는 사람은 마음으로 추종하여 위대한 공적을 기억게 하기를 바라나이다"

[김올가 / 김경천 장군 외증손녀 : 신흥 무관학교 교관 하셨다가 여러 가지 일이 생겨서 연해주까지 가셨거든요. 그때는 같이 계신 분들이 일을 나누어서 그분들과 맹세를 했거든요. 그 친구들과 각자 맡은 일을 하기로 해서 할아버지 일이 연해주 부분이었거든요.]

러시아 내전에 참전한 장군은 적군과의 연합작전으로 백군과 일본군을 수차례 공격해 승리를 거둔다

1924년 블라디보스토크에 한족 군인구락부를 조직해 항일 역량을 집결시키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선구자에게 닥친 시련은 그에게도 찾아왔다

소련은 한인 강제 이주 직전 김경천 장군을 간첩 혐의로 체포했다.

1942년 1월 소련의 북동쪽 끝 유배지에서 심장질환으로 사망

민족주의자이자 위대한 항일 투사의 말로는 비참했다.

[김올가 / 김경천 장군 외증손녀 : 억울하게 좀 돌아가셨는데. 소련은 마음속으로 (할아버지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 같아요. 자기들 사상(사회주의)으로 (평가)했기 때문에 그래서 갈라지는 거죠. 그래서 이렇게 할아버지도 억울한 거예요.]

사후인 1959년 모스크바 군사재판소는 재심을 통해 김경천 장군의 무죄를 선언했다

[김올가 / 김경천 장군 외증손녀 : 이 나라가 그냥 뭘 인정해야 하느냐면 할아버지가 이 나라를 위해서... 가족까지 버리고... (울먹이며) 늘 일기를 보면 이 나라를 위해서 꿈에서든 밥 먹든 뭘 하든 독립을 위해서만 희생하시면서 그렇게 사셨던 분이었잖아요. 되게 위대하신 분이죠. 정말 위대하신 분이고, 우리 할아버지가 아닌 것 같이 위대하신 분이라서. 또 한편으로는 불쌍하시죠. 이 나라가 그런 분들을 인정을 안 하니까. 제대로.]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이념 대립의 와중에 희생되거나 의도적으로 잊혔다.

김경천 장군도 그 가운데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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