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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사람들] 최재형,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석
2019-04-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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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중국 하얼빈역에 울린 총성

조선 청년 안중근,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다

이 의거의 막후에 '시베리아의 페치카(난로)'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연해주의 사업가이자 언론인이며 교육가였던

최재형

전 재산을 동포 교육과 독립운동에 쏟아부은 따뜻한 난로 같았던 사람

그의 시작은 초라했다

[박환 / 수원대 사학과 교수 : (최재형 선생이 태어난) 함경도라는 지역이 조선 시대 때 차별받던 지역인 데다 집안이 신분제 사회에서도 가장 천한 노비 집안이셨고. 1860년대에 함경도에 아주 큰 흉년이 들었거든요. 함경도 지역 같은 경우엔 대부분 산악지대였기 때문에 먹고 살 수가 없어서 최재형 선생이 9살 경에 (집안이) 러시아로 도주했다.]

연해주에서 러시아어를 배우며 자라난 최재형은 이후 군수 산업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다

하지만 재력을 사사로이 쓰지 않았다

연해주 일대 한인 동포의 교육을 위해 36개의 학교 설립

대동공보, 해조신문, 권업신문 등 동포들의 독립의식 고취와 계몽을 위한 한인 신문 간행

러시아 항일 의병 세력을 단결시킨 동의회 결성

최재형은 시베리아 독립운동의 대부로 우뚝 섰다

"총알을 피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 붉은 피로 독립기를 크게 쓰고 동심동력하여 성명을 동맹하기로 청천백일에 증명하노니 슬프다. 동지제군이여"

[박환 / 수원대 사학과 교수 : 안중근 의사가 최재형 선생이 총장이었던 동의회의 우영장, 우측에 있는 장군 중에 대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최재형 선생이 안중근 의사가 국내 진공 작전을 할 때 끊임없이 후원하셨고요.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할 때 모든 계획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최재형 선생이 후원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총 두 자루를 가지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으로 출발합니다. 그 총을 제공한 사람이 바로 최재형입니다.]

연해주 일대 항일 세력에게 위협을 느낀 일제는 1920년 대대적인 독립운동가 색출에 나서고

최재형은 비극을 맞는다

[박환 / 수원대 사학과 교수 : 우수리스크 헌병대에 끌려가서 최재형과 몇몇 동지들이 탈출을 시도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체포돼서 즉결 처형된 것으로 알려져 있고요. 시체에 대해서는 그냥 갖다 버리는, 그래서 그분의 시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어디에 묻혔는지, 제대로 묻히기나 한 것인지 전혀 지금 알 수가 없습니다.]

국립 현충원에 위패만 모셔져 있을 뿐

그러나 그의 정신은 1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여전히 메아리친다

"직접 겪었던 분들은 그분이 참 따뜻한 분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을 하잖아요. 가진 사람이면서도 러시아에 사는 한인들한테 많은 부분을 베푸셨던 것 같아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석

조국이 혹독한 겨울이었을 때 흔쾌히 난로를 자처한 사람

마음이 따뜻했던 독립운동가

최재형(1860~1920)

4월 참변 1920년 4월 일본군이 연해주 지역 한인들을 대량 살상한 사건

브라우닝식 연발 단총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권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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