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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번째 민족대표 '석호필' 스코필드! 그를 추모하다
2019-04-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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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을 국제사회에 알린 캐나다인 독립운동가 스코필드 박사의 49주기 추모식이 4일 오전 서울대 스코필드홀에서 열렸습니다.

행사는 정운찬 호랑이스코필드기념사업회 명예회장과 이준식 독립기념관장 등 각계 인사와 학생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습니다.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박사는 1916년 27살에 세브란스 의전에서 세균학 강의를 맡으며 한국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이후 우리나라에 머물며 3.1운동과 제암리 학살 사건 등을 기록하고,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와 일제의 만행을 세계에 알린 공을 인정받아, 1968년 대한민국 건국공로 훈장을 받았습니다.

[인터뷰: 정 운 찬 / (사)호랑이스코필드기념사업회 명예회장·전 국무총리]
"스코필드 박사님의 한국 이름은 석호필(石虎弼). 돌과 같은 굳은 의지, 그리고 호랑이 같은 날카로움으로 세상 사람을 도우면서 사는 것을 인생의 신조로 삼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인들이 너무 일본에 의해서 억압돼서 사는 것을 보고 안타까워하던 중, 1919년에 3.1운동이 일어난 겁니다. 그해 초에는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인 이갑성 선생이 스코필드 박사한테 국제정세를 가르쳐달라고 해서 이갑성 선생이 그걸 기초로 해서 3.1운동 때 독립선언서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됐다고 들었습니다."

[인터뷰: 이 용 기 / 국가보훈처 서울남부보훈지청장]
"나중에 광복 후에도 대한민국에 오셔서 서울대학교 수의병리학 교수로 재직하시면서 후학들을 많이 양성했고, 그것뿐만 아니라 아까 말씀드렸듯이 보육원이라든가 이와 같이 생활이 어려운 학생들을 많이 도와주셔서 그분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기 때문에 그 어느 외국인 (독립운동가)보다도 스코필드 박사님의 독립운동 정신이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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