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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청사를 지킨 독립운동가의 딸 이소심
2019-06-16 | 더 큰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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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거점.

그리고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 광복군이 창설된 곳.

이곳 임시정부 청사와 한국광복군 총사령부를 지켜낸 여성이 있다!

이소심 (80세)
1939년 중국 출생 독립운동가 이달 선생 장녀
1961~91년 의사로 활동
1982~92년 충칭시 인민대표 역임

이달, 나의 아버지는 독립운동가

[이소심 / 독립운동가 이달 선생 딸 : 저희 아버지는 나라의 독립을 위해 중국에 와서 현재의 동북지역에서 중국과 항일 연합전선을 하셨고 김좌진 장군과 같이 활동하셨는데, 김좌진 장군 희생 후 아버지는 베이징에서 전전하시다가 여러 지역을 거쳐 상하이로 오셨습니다. 아버지는 무정부주의자로 많은 무장투쟁에 참가하셨고, 육삼정 의거 등 혁명활동에 가담하셨습니다.

국민당 정부가 서쪽으로 이전함에 따라, 우한에서 조선의용대를 창설하셨습니다.

우리는 한중 양국 민족의 자유 해방을 쟁취하는 동시에 동아시아의 영원한 평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한중 양국 민족은 반드시 견고하게 단결해 공공의 적인 일본 제국주의를 무너뜨려야 한다.

아버지의 공적은 주로 (임시정부가 옮겨 다녔을 때) 후난성 창사에서 수많은 아이를 만나게 됩니다. 중국에서 태어나 모국어(한국어)를 하지 못하는 한국 아이들을요.

그래서 아버지께서는 학교와 비슷한 학습 반을 꾸립니다. 중국에서 태어난 한국계 후손이 모국어를 배울 수 있도록 말입니다.]

1943년 광복을 못 본채 세상을 떠난 아버지.

중국에 남겨진 딸은 역경을 이기고 의사의 꿈을 이뤘다.

[이소심 / 독립운동가 이달 선생 딸 :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저는 다섯, 여섯 살로 굉장히 어렸고, 어머니는 중국 사람이었습니다. 어머니 혼자 저희 둘을 돌봐야 했습니다. 중국에서 정말로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하지만 저 자신의 노력으로 저 역시 의사가 되었고, 과거에 대해서는 저도 다시 회고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독립운동가의 딸 임시정부 청사를 지켜내다

[이소심 / 독립운동가 이달 선생 딸 : 1991년에 충칭이 도시개혁을 하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터를 철거할 계획을 세웠고, 아파트를 건설할 예정이었습니다.1991년 철거와 재건설을 하려고 할 때, 저는 그 사실을 알고 안절부절 마음이 다급해졌습니다. 당시는 저는 충칭 인민대표였고, 11회 12회, 2선 연임 중이었습니다. 즉, 한국에서 말하는 시의원이었습니다. 이런 조건을 가지고, 충칭의 정부와 당정에 알리는 동시에 한국 정부의 원조를 호소하면서, 이곳은 절대로 없어지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소심 여사의 노력 덕분에 충칭의 임시정부 흔적들이 명맥을 잇게 됐다.

역사의 망각을 막고, 선조의 뜻을 이어가기 위한 첫걸음이다.

[이소심 / 독립운동가 이달 선생 딸 : 저는 한국의 후예이자 독립유공자의 자손으로 당연한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충칭에 있을 때, 정치뿐만 아니라 군사, 문화, 외교 등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습니다. 나라의 광복과 독립을 위해 수많은 혁명 지사들이 자신의 생명을 희생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번영과 부강은 그들의 희생과 맞바꾼 것입니다. 우리 후예들이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되며, 선열들의 의지를 계승해 한국의 번영과 부강을 위해 공헌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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