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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가사키에 산다" 원폭 피해자 권순금
2019-07-14 | 글로벌코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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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 1세

20세기 초중반 고국을 떠난 이들은 일본에서 무엇을 지켜왔을까요?

식민지와 분단, 차별, 그리고 그들의 굴곡진 삶에 대해 들어봅니다.

재일동포 1세의 기록

[권순금 / 재일동포 1세 : 하늘이 막 새카매. 그래서 시커먼 구름인 줄 알았지만 또 연기 보니까 원폭 구름이라]

권순금 (91세) 1928년 경북 안동 출생 1931년 일본 이주 1945년 나가사키에서 피폭 1963년 고깃집 '아리랑 정' 시작

[권순금 / 재일동포 1세·93세 : 조선인은 (나가사키) 고야기 섬에서 다 토목 일을 하고 있었어요. 일할 게 없잖아. 한국 사람들은. 전부 토목 일밖에 없었어. 거기(고야기 섬)에서 보통 토목 일을 하고. 우리 부친도 그래서 토목 일을 맡아서 했는데.]

[김영자 / 여동생 : 거기서 도망가려 해도 못 가고.]

[권순금 / 재일동포 1세·93세 : 섬이라 보니까 내빼려고 해도 못 내빼고 그냥 살고 있었지만. 징용으로 온 사람도 많았어요. 조선인이라고 하면 사람으로 생각을 안 하니까 일본 사람들이. '조센징 마늘 냄새난다'고 지랄하고. 사람 상대를 안 하잖아요.]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8월 9일 나가사키 일본 항복을 위해 원자폭탄이 투하됐다

사망자 23만 명 이 가운데 한인 4만여 명이 포함돼 있었다

권순금 씨는 나가사키 원폭 투하지에서 불과 1.8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권순금 / 재일동포 1세·93세 : 펑! 하는 소리를 들었지만 이렇게 보니까 하늘이 막 새카매. 그래서 시커먼 구름인 줄 알았지만 또 연기 보니까 그 원폭 구름이라. 여기보다 위쯤 될 거예요. 떨어진 데가. 떨어진 데가. 그래 당겨 보니까 영 얼굴에도 피가 나고 손도 다… 조금이라도 벗겨진 데는 다 벗겨져 버렸어. 옷을 조금이라도 입은 데는 괜찮은데 안 입은 데는 전신에 다 팔도 다 벗겨졌고. 그래도 사람 목숨이 그러한 모양이지.]

[김영자 / 여동생 : 아무것도 없지 뭐. 집도 없고.]

[권순금 / 재일동포 1세·93세 : 응. 다 쓰러져버리고 없어요. 역 앞도 역도 없었어. 역 앞이 없어졌어. 엄마가 (여동생을) 업고 우리 사람(한인)이 여관 갔잖아. 여관 하는 데 가서 이제 피해 (부위를) 치료하고. (떨어져 있던) 아버지는 우리 찾느라고, 아버지는 우리 찾느라고 원폭이 떨어졌는데 (찾으러) 간다고.]

히로시마·나가사키에 떨어진 원폭으로 한인 7만여 명이 피폭됐다

이 가운데 7천여 명은 해방 후에도 일본에 남았다

[권순금 / 재일동포 1세·93세 : 한국 가려니까 돈이 없지. 해방되고. 우리도 그래서 못 가고 있었잖아. 그래서 여기에서 어쨌든 일본에서 살아야 한다 해서 살고 있었지. 해방되고 나서 나는 조금 촌에 있었는데 먹을 게 없어서 쌀…그때는 일본 사람들이 나락(벼 이삭) 다 끊고(빼고) 나면 떨어진 거 있잖아요. 그런 거 주우러 다니느라고.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살아왔는가 싶어.]

민족 차별에 더해 원폭 피해자라는 낙인이 찍힐까 두려웠다

권순금 씨는 1980년대까지 원폭 피해자임을 숨겨왔다

[권순금 / 재일동포 1세·93세 : 옛날에는 (원폭 맞았다고 하면) 시집을 갈 수 없고 자기 딸도 시집 못 가고. 숨겨왔다고.]

[권순금 씨 조카 : 장애가 있는 아이가 태어날 수 있으니까.]

이중의 고통 속에 고깃집을 열어 56년간 생계를 이었다

[권순금 / 재일동포 1세·93세 : 할 게 없다 보니까. 그러면 우리도 이거(고깃집) 할까 해서 그래서 시작한 거예요. 시작해서 처음에는 잘 됐는데 나중에는 여기저기 되다(고깃집이 생기다)보니까. 일본 사람들도 막 (고깃집을) 하고 있거든, 지금. 일본 사람들은 그 야키니쿠(한국식 불고기)를 몰랐는데 우리 사람들이 하다 보니까 저것들도 따라 다니면서. 나는 평생 여기서 일하고 싶어. 내가 사는 한. '아리랑 정'의 고기 맛만은 모두가 알아주고 있으니까. 그만두고 싶지 않아. 앞으로 누가 계승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사는 한 '아리랑 정'을 계속할 거야.]

일본 내 한인 피폭자가 몇 명이 생존해 있는지 제대로 된 통계조차 없다

조국에 돌아온 원폭 피해자는 2만3천여 명,

현재 2천3백 명이 생존해 있다

1990년 한인 피폭자를 위해 '인도적 차원'에서 40억 엔을 출연한 일본 정부,

사죄와 배상의 움직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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