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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정리] 조선의용대의 시작 - 분단이 지워버린 항일투사들 1부 몰아보기
2019-10-14 | 기획특집 다큐멘터리
조회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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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한반도를 넘어 중국 대륙까지 삼키려는 일제

그들에 맞선 최정예 항일 독립군

숱한 역경에도 조국 독립의 꿈을 포기하지 않은 청년들

그들의 이름은 조선의용대!

그러나 해방 후 분단과 이념 대립의 비극 속에서
그들은 남에서도, 북에서도 잊히고 지워졌습니다.

중국 대륙에 남은 불굴의 항일 정신을 찾아 지금 출발합니다.


1. 조선의용대의 시작

중국 후베이 성의 성도 우한.
바로 이 도시에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아주 중요한 유적지가 있습니다.

[인터뷰: 김태빈 / 한성여고 문학 교사]
선생님. 저희들이 지금 아주 중요한 장소에 와 있습니다. 뒤로 보이는 곳이 1938년 10월 10일에 조선의용대가 창립된 장소에 저희들이 와 있는데요

[인터뷰: 김해양 / 김학철 선생 아들]
의용대가 창립했을 당시에는 여기가 대공중학교였거든요. 중국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혁명, 신해혁명이 시작한 곳이거든요. 그러니까 의용대원들이 아마 그 의미를 따서 여기를 선택한 것 같아요.


2. 약산 김원봉 장군과 조선의용대의 결성

[인터뷰: 김태빈 / 한성여고 문학 교사]
약산 김원봉 장군은 1919년에 의열단을 만들어서 20년대 아주 꾸준히 의열투쟁을 이어왔고요. 1932년 난징에서는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 만들고 이것을 지도하기 위해서 1935년에 조선민족혁명당을 결성한 다음에 드디어 중일전쟁 시기에 이곳에서 조선의용대라는 군대를 조직했는데,

[인터뷰: 김해양 / 김학철 선생 아들]
처음 국민당 정부가 공식적으로 승인한 정규화 된 항일 무장대오가 탄생했다는 이것이 아주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3. 조선의용대의 구성원

[인터뷰: 김해양 / 김학철 선생 아들]
중국의 최고 군사 학부, 군사 학원인 황푸군관학교 여기를 졸업한 거의 백 명의 우리 민족 청년들이, 열혈 청년들이 모여서 그 백여 명, 그 외의 사람들까지 백여 명이 여기서 조선의용대를 구성했는데 사실 이 대부분 사람들이 군관이에요.

-군관이라는 말은 지금으로 하자면 장교.

-그렇죠. 장교

-일반 사병부대가 아니라 부대원 거의 대부분이 다 장교로 이루어진

-그렇죠. 전부가 장교예요.



4. 조선의용대의 활약

[해설]

이곳에서 창립된 조선의용대는 시시각각 대륙의 중앙부를 침략해 들어오는 일본군이 우한을 함락하기 직전까지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용맹함을 떨쳤습니다.

[인터뷰: 김해양 / 김학철 선생 아들]
그 당시 일본군이 이 무한(우한)을 함락시키는 그 전야에 우리 의용대는 끝까지 잘 싸웠거든요.

[해설]

이역만리 중국 대륙의 한 가운데서 조국 독립을 실현하기 위해 창설된 정예 부대 조선의용대.

[인터뷰: 김해양 / 김학철 선생 아들]
우리 항일하려는 청년들이 여기서 피 끓는 투쟁을 하였고 또 이 무한(우한)이 함락되는 마지막까지 국제 군사로서 마지막까지 여기서 피 흘리며 싸웠거든요. 이것을 우리 후세들이 많이 알아줬으면 합니다.


5. 조선의용대가 타이항산으로 이동한 이유

[해설]

일본군이 우한을 함락하자, 조선의용대는 중국의 그랜드캐년이라고 불리는 타이항산 지역으로 이동합니다.

[인터뷰: 김태빈 / 한성여고 문학 교사]
선생님, 그런데 왜 조선의용대가 이 타이항산 지구로 이동을 했는지 그게 궁금하거든요.

[인터뷰: 김해양 / 김학철 선생 아들]
일부분은 중경(충칭)으로 가고 약산 김원봉이 직접 지휘하셔서 중경으로 가고

[인터뷰: 김해양 / 김학철 선생 아들]
그러니까 화북(화베이)에 있는 우리 조선 청년들을 흡수를 해서 부대를 늘리겠다.

[인터뷰: 김해양 / 김학철 선생 아들]
이것이 제일 중요한 목적이고 또 하나는 계속 일본군과 최전선에서 남아서 싸우겠다. 이 두 가지가 목적이죠.

[인터뷰: 김태빈 / 한성여고 문학 교사]
조선의용군 전적지 옛터라고 하는 표지판이 그래도 남아있네요. 1941년 1월에 화북조선청년연합회를 바로 이곳에서 결성했다고 하고.

[인터뷰: 김태빈 / 한성여고 문학 교사]
조선의용대라는 표현도 그대로 썼고 그 조선의용대 중에서도 화북지대다 이렇게 했던 것 같고요. 조선의용대의 타이항산의 역사가 바로 이곳에서 시작된 것이니까 굉장히 의미가 있는 곳인 것 같습니다.

[해설]
조선의용대가 주둔했던 마을 입구에는 반가움을 넘어 감격스럽기까지 한 건물이 남아 있습니다.

조선의용대가 우리말로 써 놓은 글씨.

총을 하늘을 향해 쏘시오.

일본군에 강제 징병돼 끌려온 조선 청년들에게 같은 민족을 죽이지 말라는 당부를 해 놓았습니다.

건물의 한쪽 벽에는 상관을 죽이고 조선의용대를 찾아오라는 글귀도 쓰여 있습니다.

언제 일본군과 교전할지 모르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조선의용대 대원들이 품었던 동포애를 짐작할 수 있는 글귀들.

마을의 중국인들이 용맹한 조선의용대를 기리는 의미에서 새기고 또 새겨 8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렇게 뚜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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