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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정리] 옌안에서 만난 조선의용대 - 분단이 지워버린 항일투사들 3부 몰아보기
2019-10-31 | 기획특집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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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시 성의 도시 옌안

Y자의 강이 도심을 가로지르고 시내 한가운데 옌안의 상징 보탑이 우뚝 서 있죠.


1935년 중국 공산당 홍군이 국민당군의 포위망을 뚫고 2만 5천리 대장정을 펼친 끝에 도착한 종착지.

그래서 중국인들은 옌안을 중국 혁명의 성지라고 부릅니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한 이후 이 도시는 항일 전쟁의 사령부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최전선에서 항일 무장 투쟁을 벌인 조선의용대에게도 옌안은 중요한 근거지였습니다.


1. 조국독립의 거점

당시 조선의용대가 세웠던 군정학교를 찾아갑니다.


[해설]
마을 사람들의 증언을 길잡이 살아 집과 집 사이의 좁은 길을 한참 올라가니 이 지역의 특별한 주거 형태인 야오동이 나타납니다.

흙벽을 파들어가 사람이 거주할 수 있게끔 만든 집입니다.


[해설]
바로 여기서 조선의용대는 조국의 해방을 맞이했습니다.

옌안은 조국 독립을 위해 싸운 항일 투사들이 좌우 합작을 활발하게 모색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낯익은 이름 하나를 떠올리게 됩니다.


2. 저항시인 이육사의 독립운동

[인터뷰: 김태빈 / 한성여고 문학 교사]
굉장히 저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관련해서 꼭 좀 소개하고 싶은 인물이 한 명 있습니다.


[인터뷰: 김태빈 / 한성여고 문학 교사]
바로 이육사 선생인데요. 이육사 선생이 1943년 1월에 친구 이선장이라는 사람에게 자기가 조만간 베이징으로 가겠다고 하면서 남긴 증언이 있는데 그 증언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 증언 내용이 뭐였냐면

“충칭으로 가서 요인을 모시고 옌안으로 가겠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고 그래요.


[인터뷰: 김태빈 / 한성여고 문학 교사]
그럼 그 당시 1943년 당시에 충칭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었고 옌안에는 조선독립동맹이 있었으니까 우파 독립운동을 대표했던 임시정부하고 좌파 독립운동을 대표했던 조선독립동맹을 이육사 선생이 연결하려고 한 게 아닌가.


3. 조선의용대 투사, 중국 천재 음악가 정율성

[해설]
고풍스러운 서양식 건물이 서 있는 이곳은 1930년대 세워진 루쉰 예술학원이 있던 곳입니다.

여기서도 조선의용대의 투사이자 중국에서 천재 음악자로 추앙받고 있는 한 인물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정율성입니다.


[인터뷰: 장두어 / 루쉰 예술학원 안내인]
24세의 정율성이 옌안에서 공부할 때 '옌안송'을 만들어 일약 유명해졌습니다. 이 노래는 많은 진보적인 청년들을 격려해 더욱더 많은 이들이 옌안으로 향하게 만들었습니다.
정율성 선생이 지휘하고 있네요. 당시 옌안 어디를 가나 정율성 선생의 노랫소리가 들릴 정도였습니다.


4. 비운의 혁명가 김산

[해설]
우리에게는 ‘아리랑’이라는 책으로 잘 알려져 있는 비운의 혁명가 김산이 ‘아리랑’의 저자 님 웨일즈를 처음 만나게 된 곳도 이곳 루쉰 예술학원 도서관이었습니다.


[해설]
조선의용대의 자취를 쫓아가다가 옌안에서 만난 세 인물,


김산, 이육사, 그리고 정율성.


그들이 목숨을 걸고 되찾고 싶었던 조국의 독립

그리고 그들이 꿈꾸었던 나라를 우리는 만들고 있나요?

분단과 이념 대립의 와중에 잊히고 지워졌지만, 그들을, 이 해맑은 미소와 당찬 결기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질문에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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