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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 디자이너'로 변신한 늦깎이 호주 동포
2019-11-30 | 더 큰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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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남들은 서서히 은퇴를 준비한다는 50살의 나이 지천명.

평범한 주부에서 화려한 보석 디자이너로 변신한 주인공이 있습니다.

호주에서 활약 중인 장옥진 씨, 직접 만나보시죠.

[리포트]
15년 넘게 시드니 중심가에서 보석 가게를 운영하는 장옥진 디자이너.

갈고 다듬고 지지고, 보석 세공 작업에 한창입니다.

단골손님이 의뢰한 제품인데요.

언제나 그랬듯, 이번에도 만족스럽습니다.

[이향 / 고객 : 반지도 여러 개하고 목걸이도 여러 개하고 대부분 충분히 좀 협의를 거치고요. (디자이너와) 제가 원하는 게 뭔지 알 때까지 대화를 나눠서 그런지 거의 다 만족해요. 보석을 갖고 있으면 보석에 맞는 창의적인 모양 같은 걸 잘하시는 것 같아요.]

1998년, 남편을 따라 호주에 온 장옥진 씨는 평범한 전업주부였습니다.

어느 날, 여행에서 샀던 원석 하나가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죠.

[장옥진/ 보석 디자이너 : 여행을 한 곳이 쿠페 페디라고 호주 중앙에 있는 오팔 산지에 가게 됐어요. 거기서 오팔 원석을 사서 왔고, 원석을 보니까 다듬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왜냐하면 그 당시에 (세공을) 맡기려고 하니까 비용이 굉장히 비쌌어요. 그래서 (직접) 배웠고, 오팔을 다듬고 나니까 그걸 만들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몇 달간 보석 세공을 배우면서 관심과 흥미는 점점 높아졌고, 2004년, 유명 디자인 전문대학에 보석가공을 전공으로 입학했습니다.

당시 나이가 50살, 늦깎이 학생으로 다시 학교를 다닌다는 건 생각보다 무척 힘이 들었는데요.

[장옥진 / 보석 디자이너 : 저는 수업에 빠지지 않았어요. (언어가 잘 안되니까) 눈으로 보고 이해를 했죠. 선생님이 그걸 시범을 보이잖아요. 그럼 눈으로 보고 그 자리에서 알고 넘어갔죠. 그러니까 수업시간에 남보다 더 신경을 썼죠.]

우직한 성실함은 달콤한 성과로 열매를 맺었습니다.

3학년 때 출품한 졸업작품의 수상을 시작으로 2007년에는 호주에서 가장 큰 보석디자인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습니다.

지천명의 나이, 보석 디자이너에 도전한 뒤 3년 만에 이룬 성과였죠.

장옥진 씨의 작품은 동양의 화려함과 서양의 단순함을 동시에 살린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세지오 바슬 / 협력업체 직원 : 장옥진 씨는 경험이 많고 많은 걸 만들 수 있고 무엇보다 아름다운 디자인을 하죠. 그녀만의 특별한 디자인이 가능한 디자이너예요. 그녀와 함께 일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장옥진 / 보석 디자이너 : 새로운 것에 도전을 한다는 것은 힘든 거예요. 왜냐하면, 이게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고 쉽게 배울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이건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그리고 노력도 많이 필요하죠.]

도전보다는 안정, 꿈보다는 현실을 추구할 시기에 남들과 다른 선택을 했던 장옥진 씨.

나이에 얽매이고 한계를 그었던 이들에게 묵직한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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